
무덤
W. 대장
빛조차 감히 들어올 수 없는 깊고 깊은 심해, 템페스트에는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 존재한다. 언제 만들었는지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거대한 조형물들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다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7대 불가사의와 같은 신이 만들었을 법한 이 조형물들로 이루어진 공간에 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재료들로 만들어진 건물들과 다양한 장식들, 광장으로 보이는 공간, 여전히 그날의 시간만이 흐르는 시계. 여전히 그의 기억 속에서 기억되는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도시. 손수 동포들의 로브와 가면을 묻었던 가장 고귀한 무덤인 아모로트이다.
“에메트셀크?”
“아...”
그가 가만히 시계를 바라볼 때,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잠시 잡념에 빠진 상태의 그를 살짝 놀라게 하며 잡념에서 깨웠다. 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소리가 들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쓸데없는 잡념과 스스로가 기억에서 구현한 이 공간으로 인한 환청이라 여기며 그는 탄식에 비슷한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멍하니 흘러가는 시계만을 보았다. 시계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다. 저 침이 0시가 되면 다시 반복되는 이 도시는 미련으로 덩어리진 누군가의 기억이 만든 환상이었다.
“수 세기가 지나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지우지 못할 나의 죄.”
그의 기억 속의 아모로트는, 동포는, 세상은 여전히 그날을 기준으로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오직 이 도시를 다시 구현한 장본인뿐이었다. 아름다우며 수수하고 고귀한 이 도시에 화려하게 치장하고 이질적인 모습으로 걸어 다니는 그는 홀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였다. 흰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고 귀에는 귀걸이를 달고 치장을 하며 모든 것을 버렸다. 모든 것을 되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 안 남았어.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그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지금 세상에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잃어버리고 빼앗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되돌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환상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구현하고 밟고 있는 이 환상 속의 세상은 무덤이었다. 마치 성서 속의 신의 아들이 부활한 그런 무덤. 그가 만약에 이 세상을 되돌린다면 다시 살아난 동포들을 위한 무덤이자 환상. 그는 다시 허공에서 시선을 옮겨 주변을 둘러보면서 기억을 따라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이곳은...”
함께 살아남았던 동포의 문양이 걸린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 라하브레아. 세상이 돌아와도 그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나의 동포. 내가 되돌릴 우리의 세상에서 너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멍하니 그 문양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미트론, 할마로트, 이게요름, 나브리알레스... 살아남았지만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서 희생하고 결국에는 가장 원하던 이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될 가엾은 나의 동포들. 무덤조차 없고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자는 남은 이들뿐이겠지.
“...”
에메트셀크는 말없이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그 문양을 스쳐 지나갔다. 감정에, 미련에 짓눌리기에는 아직 남은 일들이 있다. 그의 걸음걸이는 문양을 지나고 나서 다시 기억을 따라 정처 없이 헤매이기 시작했다. 오래되었지만 선명한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서 그는 이 도시를 쭉 돌아보았다. 몇만 년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도 그의 기억은 여전했다. 그는 걸어 다니며 자신이 동포들이 에테르를 섞어서 구현한 존재들을 만나기도 했다. 모두 그날에 멈춰있는 환상들이었다. 그날 이후의 동포들의 모습은 에메트셀크의 기억에 없기에 오로지 그 날의 아모로트만이 구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없는 단 하루의 아모로트는 그날의 아모로트 뿐이었다. 그는 다시 시계 소리가 울리는 광장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그 바닥에 앉고는 시계의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으려던 그였다.
“에메트셀크?”
“...휘틀로다이우스.”
“역시 너구나. 오랜만이야.”
“너는... 아. 이런, 나의 잡념이 섞인 모양이군.”
“후후, 여전히 너답구나. 많이 변했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어.”
그를 다시 부르는 소리에 환청이라 생각하고도 미약한 기대감을 가지고 뒤를 돌아본 그의 시야에는 과거에 존재했던 친우의 환상이 서 있었다. 그것도 에메트셀크, 장본인의 사념이 섞여서 그 날이 아닌 그 너머까지 알게 된 친우의 환상은 그를 부르고는 장난스레 놀란 표정을 하다가 에메트셀크의 옆에 앉았다.
“이곳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구나.”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그 사람은...”
“이제 없어. 그놈과 닮은 불완전한 조각만 남았을 뿐이야.”
“이런, 에메트셀크. 나도 알고 있어. 그럼에도 여전히 그 사람의 영혼이잖아?”
장난스러운 목소리에서 마치 아이를 다루듯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변한 친우의 환상에 에메트셀크는 혀를 차는 듯한 소리를 내며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리고는 환상을 바라보았다. 그런 에메트셀크의 모습에 친우의 환상은 조금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웃지 마라. 그리고 넌 또 무슨 생각이지?”
“응?”
“네 성격이라면 그냥 나와 그 영웅님의 일을 구경하고 그 결말을 받아들였을 터인데...”
“에메트셀크?”
“너는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
“하데스?”
“어째서 내 앞에 있는 거지? 너는 누구야.”
에메트셀크는 대화하는 도중의 위화감을 이상함으로 연결하고는 찾아낸 결과에 경계로 가득한 눈으로 옆의 친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반응에도 휘틀로다이우스는 푸스스 웃음을 보이다가 에메트셀크의 작은 몸을 쓰다듬었다.
“내 친구.”
“너는 누구야.”
“우리의 에메트셀크.”
“여긴 어디야.”
세상이 깨진다. 아모로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들이 점점 파스스 흩어져서 사라진다. 동포들의 환영도 아름다운 건물들도 반복되는 시계도 흩어지며 사라진다. 그리고 머리에서 느껴지는 온기.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머리를 쓰다듬는듯한 느낌.
“이제 깨어나야지. 에메트셀크.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잖아.”
“아아, 그래. 이건 나의 기억이군.”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의 에메트셀크. 내 친구 하데스.”
한 줌의 온기를 담은 그의 친우가 파스스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에메트셀크가가 꾸는 마지막의 꿈이자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주마등이었다. 가만히 있던 에메트셀크는 복부에서 서서히 에테르가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정해진 결말도 아니고 그가 바라던 결말도 아니다. 그런 에메트셀크의 너머로 누구보다 아름다운 하늘이 보인다.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가 유일하게 같았단 것을 알려주는 듯이 여전히 넓고 아름다운 하늘에서 옅은 빛이 흩어진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시야에는 그 사람의 아름다운 에테르를 가진 영웅이 서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해라. 우리는...... 분명 살아있었다는 걸......”
그 사람의 에테르를 가진 영웅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던 에메트셀크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가 서 있는 너머로 보이는 유적이 된 지금의 아모로트. 동포들의 무덤. 그날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유적을 보았다. 영웅님, 그거 아나. 이 아모로트를 구현한 것은 모든 것을 잃을 영웅님을 위한 무덤이었다는 것을. 에메트셀크는 전해지지도 않을 말을 속으로 말하며 천천히 흩어지는 에테르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 모든 것이 끝을 맞이한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나의 추억, 나의 미련, 내 동포들의 무덤. 그리고 나의 무덤.
모든 것은 과거의 미련. 그러니 말이다. 영웅님.
Don't Look Bac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