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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트셀크의 사랑

W. 마쓰루

아모로트에선 초침 소리가 들린다.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하지만 아모로트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종말 이전의 하루를 반복해 나간다.

 

아모로트엔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멀리서도 보이는 빌딩부터 나무에 달린 보랏빛이 섞인 잎사귀까지 전부 그가 창조해낸 것이다. 최초이자 최고의 마도사, 그이기에 이 도시는 간단히 만들어진 걸까 아니면 제 마력을 거의 모두 쏟아부을 정도로 절박하게 만들어진 걸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말을 하고 시선을 맞춰온다. 어린아이가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단다. 이 늦은 시간에 다니는 것은 위험해. 에메트셀크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상냥함을 그들은 말로서 뱉는다. 그도 이 말과 함께 자라온 걸까 아니면 자라가는 생명에게 이런 말을 해왔던 걸까. 그것조차 알 수 없다. 에메트셀크만이 존재하지 않는 거리에서 에메트셀크는 말을 한다.

 

어쩌면 그는 1세계를 사랑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나무들이 죄다 보랏빛을 띠고 있어 따라 만들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소중한 것들에 불순물을 섞이게 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1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색의 이파리들을 나무에서 전부 배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반보다 조금 덜, 이 세계의 색이 아모로트에 녹아있다.

 

그는 어쩌면 빛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조디아크의 사도이기 때문에 빛이 꺼림직하다 했지만 아모로트의 불빛은 절대 꺼지지 않았다. 마치 그 시절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있다 보여주듯이. 바다 아래에 밝은 빛이 들어오는 낮의 시간에도 건물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희망을 위한 등불이라도 되는 양 흔들림 조차 없다.

 

바래진 기억은 에메트셀크의 생각을 원동력 삼아 움직이고 말한다. 어떤 고대인은 오늘 창조물 관리국에 들를 예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에메트셀크의 생각을 열어보면 그는 이리 말한다. “나의 최고 걸작은 ‘움직이는 인형’ 이야.” 감정도 없고 공포심을 품지도 않아서 어떤 위험한 상대에게도 망설이지 않고 맞서는, 병기를 최고 걸작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어서 그는 그것이 덧없고 아름답다고 덧붙인다.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완벽한 자들만이 사는 도시에 ‘움직이는 인형’이 어째서 필요할까. 이것은 에메트셀크의 생각이다. 그는 영웅을 덧없고 아름답다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모로트에서는 토론이 이어진다.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만큼 끝없는 토론이. 멸망의 날 이전의 토론들은 하나같이 무겁다. 다가오는 절망에 완전한 존재들은 불안의 감정을 가진다. 평온해 보이는 가면 뒤로 무엇을 숨기고 있을지, 그중 대부분은 14 위원회를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이 도시만큼은 분명 지켜줄 것이라고. 사방에서 피어나는 불꽃들과 피를 흘리는 대지, 무너지는 건물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마치 영웅을 의지하듯, 시민들은 가장 높은 그들을 의지했다. 에메트셀크는 그것을 들어왔다. 이것은 에메트셀크를 누르고 있는 영혼들의 목소리였다.

 

에메트셀크는 잠을 좋아했다. 육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을 뿐인 아씨엔에게 잠이 무슨 의미인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아모로트의 공기는 너무나도 쉽게 그 답을 알려주었다. 눈을 감은 그는 이곳에 있었다. 차마 놓지 못한 미련들을 달게 느끼며, 정신이 들면 끔찍할 뿐인 세계에서 육체를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에 취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감정적이었다. 그를 원래의 그로 만들어 주는 익숙한 공기에, 익숙한 사람들에, 익숙한 기억들에 안겨 원래의 그로 돌아간 것이다. 마치 꿈속의 그가 그랬을 것처럼.

 

그는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영웅을 아모로트의 시민으로서 등록해 둔 이유에 대해, 결국은 아무런 이유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어중간한 상태로 찾아오면 안 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괴물이 되어 버렸을 때 아모로트의 시민 신분이 도움이 되기나 할까? 어설프게 지성이 남아있는 상태를 바랐다곤 하나 이곳의 시민들을 에테르 덩어리라 판단하고 잡아먹기 시작한대도 여전히 시민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에메트셀크는 괴물과 함께하는 삶을 기대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빛의 에테르 덩어리인 괴물일지라도 보잘것없는 불완전하게 쪼개진 영혼보다는 그것이 더 채워져 있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니까.

 

에메트셀크는 영웅을 괴물이라 불렀으나 동시에 아모로트의 시민이 되길 바랐다. 세상을 부숴주어 옛 아모로트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괴물이라도 동료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만일 영웅이 모든 빛을 흡수하고도 멀쩡했다면, 에메트셀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그는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다. 휘틀로다이우스의 입을 빌리는 것이 아닌 제 입으로, 아마도 아주 그리운 그 사람의 이야기만 제외하고.

 

못 보았을 리는 없다, 찾지 못했을 리는 없다. 휘틀로다이우스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영웅은 누군가를 찾았다. 동료들에게 돌아가는 길이 조금 늦더라도, 영웅은 중요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 휘틀로다이우스가, 에메트셀크가 그리워하는 특별한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은 아모로트에 없었다. 특별한 사람이라면서, 진실을 꿰뚫어 보는 친구는 만들었으면서, 어째서 그는 그 사람만은 창조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 사람은 멸망하기 하루 전의 아모로트에 있지 않아서? 하지만 이곳은 에메트셀크의 정신이나 다름없는 세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에메트셀크는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에메트셀크의 생각을 빌려 움직이는 휘틀로다이우스가 말한 그리움은 과거의 일이었다. 그저 까마득한 과거이기 때문이 아닌, 아모로트의 현재에서도 그 사람은 과거의 누군가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것만큼은 그의 사랑이 아니다.

 

아모로트는 그의 모든 사랑이었다. 아모로트에 모든 마음을 쏟아서 닳아버렸고 닳아버린 마음을 알고 계속해서 매달린다. 처절하게, 질척하게, 품위라고는 하나도 없이, 인간의 마음을 아모로트에 두었기에 에메트셀크는 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 아모로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육신은 사라졌어도 그의 마음은, 아주 작게 남아있던 사랑의 감정만큼은 그곳에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영웅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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