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형상
W. 면제되다맘
‘잡념이 섞였군.'
에메트셀크는 눈앞의 창조물을 응시했다. 커다란 키, 긴 로브와 얼굴을 가리는 하얀 가면을 걸친 고대인. 그는 분명히 환상 도시 아모로트를 돌아다니는 다른 고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특색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고대인을 불량품 취급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자는, 에메트셀크가 만들어 낸 종말의 아모로트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잡념이 섞였어. 초보적인 실수야."
고대인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메트셀크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그래. 네 말대로 잡념이 섞였다. 그래서 네가 만들어졌지."
“……"
거품은 에메트셀크를 위해 무릎을 꿇고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림자 주제에. 에메트셀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우연한 실수로 태어난 그림자는 끔찍하리만큼 아모로트 시민들의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너는 실패작이다.”
에메트셀크가 가증스럽다는 듯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거품은 웅얼거리는 음성 사이에 웃음소리를 섞었다. 세상에 갓 난 미숙한 존재를 다정스레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가면 밑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에메트셀크는 이 부질없는 것의 터무니없는 시선에 진저리를 쳤다.
"밖의 되다 만 것들과 별 차이도 없는 주제에 그런 모양새라니. 가증스럽다. 역겹고, 추악해."
"그렇게나 내가 못 볼 꼴이라고 생각해?“
"널 없애야겠어. 이 도시에 너는 어울리지 않아."
답지 않게 감정이 격해진 것을 느낀 에메트셀크는 눈을 감았다. 그는 눈을 감고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 이 순간, 손가락을 한번 튕기는 것으로도 잘못 완성된 거품은 터져 존재했던 사실조차 말끔히 씻겨 내려갈 것이다. 가장 오래된 마도사는 창세의 비적을 떠올리며 입을 굳게 다물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들끓는 화를 천천히 진정시키며 머릿속을 정리한 그는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조금 비틀었다.
이대로, 모든 것을 치워낼 생각이었다.
"그걸로 만족하는 거야?"
목소리에 이끌려, 에메트셀크는 불현듯 눈을 떴다.
다시금 이질적인 짜증이 치솟았다. 그는 자신이 답지 않게 격한 감정으로 거품을 대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고작 해봐야 허상인 존재일 텐데. 에메트셀크는 눈앞의 고대인에게 으르렁거렸다.
"부르지 마. 널 없앨 생각이니까. 그편이 네게도 더 나은 일이지.“
"날 없애겠다고 말했지만, 성실하게 대답해 주고 있잖아."
고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끝내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를 기억해?“
"...."
에메트셀크이 시선이 애나이더 아카데미아로 향했다. 오랜 세월 동안 닳아 없어질 만큼 끌어안고 살았던 추억들은 마치 그날에 직접 와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모로트의 빈자리를 추억으로 메꾸며 그것들을 거듭 되새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에메트셀크는 그림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얼굴의 표정을 특정할 만한 특징 없이 둥그렇게 만들어진 거품의 생각을 읽는 것은 그로서도 퍽 버거운 일이었다. 한 쌍의 노란색 눈동자가 개성 없는 흰빛의 가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긴 침묵 끝에 거품이 입을 열었다.
"사람의 마음을 형상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거품은 다시금 애나이더 아카데미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답은? 교수가 답을 일러줬잖아.”
흐릿하게 무너져 뚜렷하지 않은 음성이 귓가에 윙윙 맴돌았다. 사람의 마음을 형상화한 창조물을 가져오세요. 아카데미아의 평가 점수에는 포함되지 않는 특별 과제. 점수에 포함되지 않기에, 반절의 학생들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은 반절은 끝내 마음에 차는 해답을 얻지 못해 낙오되었다. 어린 시절의 에메트셀크는 후자의 학생이었다. 결국에는 정답을 찾기 위해 아카데미아의 교수를 찾아갔을 때 교수가 그에게 돌려준 답은. 에메트셀크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기억나지 않아."
빈말이 아니었다. 그때 어린 학생은 그의 인도자가 돌려준 답은 거듭 곱씹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에메트셀크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는 스승 되는 이의 모습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개성인 가면의 형태가 어떠했는지, 그가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는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했으나 그 대답만큼은 기억나지 않았다. 거품은 침묵하는 에메트셀크를 보며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교수가 정답을 말하기는 했어?"
"아니."
거품이 즉답했다. 에메트셀크는 다시금 손가락을 맞붙였다.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라도 찔린 양 아모로트의 공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느꼈다.
"허상인 주제에, 아는 척 떠들어대지 마."
"흠...."
에메트셀크의 퉁명스러운 일갈에, 거품은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거품이지. 네 마법으로 태어난, 그림자지.“
"그렇다면 이젠 사라져야겠군.“
허상을 향해, 에메트셀크가 최종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거짓과도 같은 존재는 끝까지 에메트셀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외려 그 가면 밑으로 에메트셀크를 빤히 응시하며 그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그 문제의 해답 말인데.”
더는 들어줄 만한 가치는 없다. 에메트셀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손을 들어 올렸다. 다시금 마법을 쓰기 위한 단 한 번의 방아쇠가 마련되었다. 이대로 그가 손가락을 튕기면, 이 포말은 바닷물에 녹아. 완전히.
“지금은 그 문제의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에메트셀크?”
딱.
정적이 찾아왔다.
옷자락이나 가면 따위의 흔적도 없이, 그 거대하던 고대인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에메트셀크는 그 텅 빈 자리를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잡념. 잡념으로 인해 잘못 태어난 존재는 그렇게 빠르게 사그라지었다.
하지만 거품이 터진 자리에는 동그란 자국이 남듯, 에메트셀크의 마음 한쪽에도 동그란 파문이 일었다. 마음의 형상화. 거품이 그에게 말했다. 에메트셀크는 이미 해답을 찾았다. 그 역시 거품이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똑똑히 이해하고 있었다. 마음을 형상화할 수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돌고 돌아 마침내 에메트셀크에게 나타났다.
“….”
시위가 고요했다. 아모로트의 마지막 바로 그 전날을 반복하는 기괴한 환상 도시가 완성되었다. 있어야 할 자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고, 없을 자들은 없는 그런 이상한 도시다. 그러나 딱 한 명만큼은, 그 자리에 있었으되 이 도시에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이 도시에 있던 자. 에메트셀크가 유일하게 부정하고 싶은 자아.
거품의 이름은 하데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