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는 자, 듣는 자
W. 뭉먀
자, 이 아씨엔 에메트셀크의 무대에 온 것을 환영하지. 관객께서는 자리에 앉아 이 짧고도 긴 무대의 연하고도 짙은 어둠을 즐겨주시길 바라네. 극 중에 자리를 비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글라스를 높이 들어주시게. …자리를 비울 수 있다면 말이지.
‘무대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하지. 자, 어려운 이야기는 아냐. 그래… 어느 정도일까.
“그의 발이 어두운 무대 한가운데를 가르듯 나아갔다.”
…무대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그 마을의 이름은…, 그래. 그냥 바인이라고 하지. 바인에는 많은 장인이 살았다. 그 장인들은 각각 자신만의 특기가 있었어. 각기 다른 것에 특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인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기술을 칭찬했지. 그들 덕분에 마을은 발전해나갔다.
“그는 상상해보라는 듯,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 중, 사탕을 만드는 장인이 있었다. 사탕, 그것은 아주 달콤하면서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먹을 수 있지. 그가 만드는 사탕은 아주 멋진 모양을 가진 것부터, 먹으면 행복이나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맛까지 아주 다양했어. 사탕뿐만 아니라 초콜릿이나, 설탕공예 등… 아주 많은 달콤한 꿈의 조각들을 만들어갔지. 왜 꿈의 조각이냐고? 나 참, 역시 불완전한 것들은. 사탕이란 말이야, 그건 잠깐 입에 남았다가 달콤함을 남기고 사라지지. 행복감을 주고는 사라진다고. 설탕이나 초콜렛도 마찬가지야. 그걸 먹은 사람을 순간적으로 행복하게 만들고는 사라져버리지.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계속 그 단 맛을 잊지 못하게 해. 그건 꿈과도 같지. 지금 너희가 꾸는 이런 것처럼. …사족이 너무 길었다. 어쨌든, 그 장인은 그런 꿈들을 모두에게 나누어주고 다니는 자였다. 모두들 그를 좋아했고, 그 장인도 또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행복함을 주는 사탕과 과자를 만들었지.
“그는 무언가를 추억하듯,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마을에는 또 다른 장인들이 있다고 했지. 그들 중에서는 술을 만드는 장인도 있었다. 그가 만드는 술은 아주 고혹적이면서도,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듯한 술이었다. 마을 이름처럼, 훌륭한 포도로 만든 그의 마찬가지로 훌륭한 와인은, 마을의 그 누구도 그 맛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술도 똑같아. 그것도 잠시의 꿈을 선사해주지. 다만, 사탕은 많이 먹을수록 그것을 끊을 수 없을만큼 행복한 곳으로 향하지만, 술은 많이 마실수록 지독하고 비참한 현실로 달려간다는 데에 있으니… 조금 다르겠지. 아니, 같은가.
“작게 고개를 숙인 그는 멈출 수 없다는 듯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표정은 그대로였다.”
사탕은 여러가지 맛이 들어가지. 과일이든, 꽃이든. 마을 이름을 따라 그 장인의… 좋아. 장인을 구별하려면 구별하는 이름이 있어야겠지. 좋은 이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 그냥 ‘너’라고 하지. 너는 마을의 특산품인 포도를 이용한 포도맛 사탕을 아주 잘 만들었어.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너’라고 지칭할때에는, 숨을 삼키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무대를 방해했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눈에 경멸과도 비슷한 무언가가 엿보이는것을 느꼈다.”
너는 그 포도맛 사탕을 누구에게나 나누어주었다. 대가를 치르려는 이들은 넘쳤지만, 그런 작은 대가마저 바라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널리 모두에게 맛보여주었지. 누구나 너의 사탕에 찬사를 보냈고 그 사탕의 맛에 중독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장인들 사이에서도 너의 사탕은 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기발한 감각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 사탕을 먹으면, 어떤 장인이든 자신의 작품을 한층 더 발전된 것으로 만들 수 있었어. 일부 장인들은 너의 사탕을 탐탁지않게 여긴 이도 있었지만, 그 사탕은 ‘정말 잘 만든’사탕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사탕에 대해 공공연히 험담을 할 수는 없었지.
자, 술을 만드는 장인에 관해서도 설명을 해야겠지. 술을 만드는 장인…, 그래, 이것도 구별을 위해 ‘나’라고 해 둘까. 나는 아주 향긋한 술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만든 술을 마시면, 예를 들어… 저녁식사때 딱 한 잔 마시면 그 저녁식사를 완벽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고, 내 술로 잔을 부딪친 자들은 단단한 결속력을 다질 수 있었다. 사탕도 술도 행복을 주는것은 같고, 장인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너의 사탕을 먹었고 일을 마친후에는 나의 술을 마셨다. 그것은 마을의 전통과도 같이 여겨졌다.
“그는 가면을 쓰듯 얼굴에 손을 얹었다. 손 아래로 드러난 입술이 꾹 다물어진 것이,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았다.”
어느새 두 장인은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자가 되었다. 모두가 아침에 너의 사탕을 입에 머금었고, 모두가 하루의 마무리를 나의 술로 장식했다. 우리는 그 어떠한 사례도 받지 않고, 마을의 발전과 안녕을 위해 사탕과 술을 만들었다. 가끔 우리 둘은 만나서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의 기술, 서로의 사탕과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만큼 가까웠고, 누구보다도 서로의 기술을 잘 알았다. 그리고 서로의 기술을 접목해, 술이 들어간 사탕이나, 술을 이용한 초콜릿 등, 여러 합작품을 만들어냈지.
“손을 뗀 그 자의 얼굴은, 마치 한 사람의 장인 같았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위엄과 자부심이 무대를 지배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떠난다니.
“그의 연기가 순식간에 무대의 배경을 그곳으로 바꾸었다. 그만큼 그는 훌륭한 배우였다.”
마을의 모두가 너의 사탕을 좋아하는걸 알잖아. 네가 없으면 사람들은 너의 사탕을 먹지 못하잖아. 그럼 다들 의욕도, 능률도 떨어질거야.
“ ‘그렇기에 떠나는거야, ■■■■■, 나의 오랜 동료여. 뭐든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것은 좋지않아.’ ”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갈 생각이야?
“ ‘나는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많은것을 듣고 느끼고 생각하러 다닐거야. 그것들은 내가 만드는 사탕과 과자들을, 더욱 큰 행복으로 이끌어줄거야.’ ”
이해할수없어. 우리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일해왔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사탕은 이미 모두에게 큰 행복을 주고있잖아. 나의 술과 너의 사탕. 우리 마을에 있어서 이 두가지는 언제나 함께야. 어느 하나가 빠져서 되는게 아니야.
“ ‘나를 이해해주길 바랄게. 나를 가장 잘 아는 동료여.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는것이 아니야. 그저 조금 더 좋은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사탕과 술을 즐기는 자들이 더욱 더 다양한 행복을 이어나가도록 하고싶을 뿐.’ ”
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자취를 감췄다. 내일도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하고 잠자리에 든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본 건, 차갑게 식어있는 냄비와 떠난 자가 남기고 간 흔적 뿐이었지. 마을의 사람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던 장인이 어느날 갑자기 떠나고, 그가 만들던 것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달콤한것을 먹지못해 심통이 났고, 어른들은 아침의 일에 짜증을 부렸으며, 장인들은 자신들의 일에 창의적인 무언가를 더해가지 못했지. 그런것들이 모이고 모여,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을 만드는 나에게 집중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욱 맛있는, 훌륭한 술을 맛보길 원했고, 나는 그들을 위해 두배, 세배 맛있는 술을 만들어야했다.
“그는 다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가면을 쓰는 듯 한 그 몸짓에, 나도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너의 사탕의 맛을 잊어갈 때 쯤, 너는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온 네가 한 말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다녀왔어.’ 였다. 마치 잠깐 한시간정도 밖에 나갔다 온 사람처럼. 가볍게 말을 건네는 너를 보고 나는 얼이 빠졌다. 손에 든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지. 네가 돌아오자 마을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술에 절어 하루를 마감하던 사람들이, 다시금 너의 사탕으로 즐거움을 되찾았다. 너는 어디를 방문했는지는 그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다시 만들기 시작한 사탕에서는 예전과는 다른 새롭고 강렬한 맛이 서려있었다. 마을의 모두는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맛이 나는 사탕에 대해서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 나는…. 나는, 그 사탕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맛이 없다거나, 취향이 아니라거나, 그런 가벼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이 사탕이 모두에게 찬사를 받고, 모두가 너의 여행길을 응원하게 된다면…, 너는 또 마을을 떠나서 오랫동안 이 거리에 오지 않겠지. 나는 매일 술을 만들고, 너의 사탕이 또 없어진다면 마을의 모두는 또 나의 술을 마시며 기약없는 행복함을 그릴테지.
“다시 손을 뗀 그의 표정은 지쳐보이는 장인의 그것이었다.”
마을은 예전보다 훨씬 활력이 넘쳤다. 너의 사탕은 예전보다 더 다양한 ‘바깥’의 맛을 모두에게 선사했고,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의 술은 예전과 같은 맛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순간 찾아왔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마을의 활력은, 그 누구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던 ‘그것’에 의해 분열해갔다.
시작은 아주 작은 계기였다. 사실,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술이 들어간 사탕, 와인으로 만든 초콜릿, 와인과 잘 어울리는 과자. 사람들은 갈수록 사탕과 술에 중독되어갔다. 마을을 위해 우리가 하던 일이, 마을을 서서히 좀먹고 있었다. 행복은 느낄수록 그것에 무뎌져가지.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없어지면… 엄청난 상실감이 그 자리를 채운다.
“괴로움을 토로하는 듯,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리고 너는 그런 마을의 모두를 보고, 다시금 마을을 나가려했다. 마을 밖의 다른 무언가를 찾아서. 마을의 모두를 구할, 모두를 다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듣고,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한번 잃어버렸던 사람들은, 자신이 되찾은 것에 있어서 집착을 보이기 마련이지. 네가 마을을 떠날 낌새가 보이자, 사람들은 너를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붙잡아두었다. 어떻게? …잔혹하게도… 행복에 도취하게 된 사람들은…, 행복을 만들어내는 자를 차갑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 가두었다. 죄목은 상관없었다. …뭐, 도주죄든 뭐든, 사람들에게는 그저 행복을 만들어내는 네가 필요했다. 필요한것이 ‘너’인지 ‘사탕’인지, 이미 취해버린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술을 만들었다. 언제나와 같은 일정량의 행복만을 선사하는 나를, 마을 사람들은 정말 잔혹하게도 너의 감옥을 지키는 간수로 만들었다. 너는 감옥 안에서 계속 사탕을 만들어야했고, 나는 그런 너를 지키며 언제나처럼 술을 만들었다. 너는 이따금 내게 네가 만든 사탕, 그 사탕은 마을의 모두에게 주는것과는 다른, 옛날 우리가 처음 만나 같이 일을 시작했을때의 그 맛이었지. 그것을 주곤 했다. 감옥 안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옥 안의 한 뼘조차 안되는 그 창문 아래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이 너의 방을 비출때마다, 너는 네가 만드는 사탕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표정을 생각하며, 그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듯 고개를 떨궜다.”
너는 가끔 내게 사탕의 재료를 조달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감옥 안에서는 구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설탕, 초콜릿, 행복을 주는 행복의 재료들. ……어느날, 너는 어떤 한 재료를 주문했다. 그것은 나의 술, 나의 와인이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감옥에 들어온 날 부터 짓던 그 표정이 아니었다. 아주 옛날, 우리가 일상처럼 마을을 위해 토론하던 그때의 표정이었다. 활기넘치고, 미래를 생각하는 밝은 표정. 나는 그 와인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구해 너에게 가져다주었다. 너는 감사의 인사를 하며, 내게 사탕을 주었다. 그래, 우리가 함께 일했던 때의 그 맛이 나는 사탕. 나는 그것을 바로 입에 넣지 않고, 품에 넣었다.
그날 저녁, 마을의 모두가 술을 가져가고… 나와 너 둘만이 감옥에 남았다. 너는 뒷정리를 하던 나를 보며 말을 걸었지.
“ ‘우리는 더욱 많은것을 듣고, 느끼고, 생각해봐야 해.’ ”
무슨 말이지? 그건 네가 마을을 나갈 때와 같은 말인데. 너는 지금 감옥 안에서 모두를 위해 사탕을 만들고 있잖아. 여기서 나가지 않는 한, 어디에도 갈 수 없어.
“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의 행복에 의해 망가지고 말거야.’ ”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게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나? 물론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있어.
“ ‘행복은, 허상이 아니라, 직접 찾아낼 수 있는 무언가야.’ ”
우리가 주는것이 단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건가?
“ ‘그래. 우리는 강제로 그것을 느끼게 할 뿐. 나는 마을의 모두를 구하고 싶어.’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너는 내가 어떤말을 하든 그저 조용히 웃을뿐이었다. 나는 뒷정리를 마치고, 감옥의 옆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네가 한 말을 곱씹었다. 모두에게 주는 행복, 내가 해 왔던 일들, 마을을 나가 많은것을 느끼고 돌아온 너. 그런것들을 생각하기에 밤은 길었고, 나는 금방 그 밤의 길이에 익숙해져갔다. 품 속의 사탕이 딱딱하게 내 심장을 압박하는 것 같았지.
아침이 되어,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 날의 하루를 시작할 사탕을 받으러왔다. 너는 사탕을 모두에게 나눠주고, 마을 사람들에게 일렀다. ‘오늘의 사탕은, 다른때보다 특별하고 행복한 맛이 난다’고. 마을의 모두는 그 말에 대단히 기뻐했다. 너는 모두가 기뻐하는 것을 보며, 옆에 서있던 내게 말을 걸었다.
“ ‘■■■■■, 나의 가장 친애하는 동료.’ ”
…그래, 나의 가장 오래된 동료.
“ ‘이번엔 말해야겠어. ……다녀올게.’ ”
너는 그 말을 하고서, 손에 들고있던 사탕을 먹었다. 마을의 모두도 거의 동시에 사탕을 먹었다. 마을 사람들은 웃으며 서로 오늘 하루를 기대하는 말들을 나누었다. 나는 갑자기 인사말을 하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나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작은 사탕이 놓여있었다. 그 사탕은 심플하면서도 오래된 것 같아보이는 포장지로 감싸여있었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그 사탕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의 모두는 하루를 기대하는 말을 끝까지 나누지 못했다. 그들은 곧 그 자리에 쓰러졌고, 순식간에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굳어버린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억지로 목을 움직여 너를 바라보자, 너는 마치 자비로운 신과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모두를 구하기 위해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신. 허상뿐인 행복을, 파괴하는 신. 너는 내게 다시한번 속삭였다.
“ ‘다녀올게, ■■■■■.’ ”
포도를 으깬 듯, 아주 붉고도 아름다운 것들이 마을 곳곳에 피어났다. 마을의 모두는 으깬 포도… 나의 술과도 같은 색에 물들었고, 마지막까지 서 있던것은 품 속의 사탕을 꽉 쥔 나와 그것을 끝까지 자비롭게 지켜보던 너였다. 너는 남아있던 한 마을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무언가를 선사하듯 팔을 벌렸다. 그리고… 너는……, 쓰러졌다. 바닥에는 나의 술과도 같은, 붉고 아름다운 웅덩이가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이 나고 있었지. 나는 이 마을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저 사탕을 꽉 쥐고 있을 뿐인 불쌍한 장인이었다.
마을의 모두가 쓰러지고 나만 남았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고, 그것은 무대 위에서도 이어지지.
“그는 사탕이 놓인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느새 반대쪽 손에는 빈 와인잔이 들려있었다.”
자, 이 사탕에는 독이 들었을까? …마을의 모두를 쓰러지게 한, 모두의 허상뿐인 행복을 앗아가버린 사탕. 네가 마지막의 전날 밤, 내게 주었던 그 사탕에.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탕은… 이 사탕의 안에는, 내가 만든 술이 들어있지. 마을 사람들을 죽인건 내 술일까? 아니면 네가 만든 사탕일까?
“그가 와인잔을 살짝 흔들자, 비었던 잔 안이 붉은 색으로 차올랐다. 그것은 가득 차고도 넘쳐흘러, 그가 서있는 무대에 핏빛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무대의 막은, 배우가 연기를 마치기 전까지는 내려가지 않아. 나의 무대를 끝내기 위한 것들이 내 손에 있다. 이젠 너의 선택이야. 술을 고를텐가, 사탕을 고를텐가. 둘 다 독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네가 마지막의 전날 밤 내게 준 사탕이 독인지, 아닌지. 이 사탕 안에 든 내 술이 독인지, 아닌지. 그리고 선택해. 내가 어느 것을 취할지. 네가 어느 것을 취할지.
“어느새 나는 무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의 양손에 들린 와인잔과 사탕이 스포트라이트의 불빛을 받으며, 마치 내게 선택을 강요하는 듯 했다.”
네가 무엇을 고르든, 그것은 이 무대의 마지막이 될 거다. 그리고…, 고르기 전에 해야 할 대사를 잊지 않았길 바라지. 단 한 줄. 그 대사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그 대사를 읊었다. 동시에 그도 같은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 ‘다녀올게, 에메트셀크.’ ”
다녀올게, 나의 친애하는 동료.
“……그리고 우리는 무대의 막을 내렸다. 막이 내린 무대에는 빈 와인잔만이 놓여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