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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차례

W. 시민

하이델린이 조디아크와 세계를 가르던 마지막 일격의 순간은 간단히 표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무언가가 잘렸다, 갈라졌단 말로는 부족했다. 막대한 에테르를 품고 창조 된 두 별의 의지가 충돌할 때마다 에테르의 잔해가 눈부시게 부서져 내렸다. 조디아크가 봉인되던 순간, 막대한 에테르 덩어리는 처참하게 갈라졌다. 역사상 한 번도 시도된 적 없었던 대규모 창조 마법으로 태어난 두 환상 생물의 결전은 종말의 재현과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와 함께 조디아크가 갈라져 봉인된 후, 하이델린은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는 셋 밖에 남지 않은 서로를 확인하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의 공포가 가시고 사고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야 겨우 엘리디부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죽어버린 이들이 하지 못 할 사치스러운 고민. 하고 싶은 일이 많기에 고를 수 없는 막막함과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지 모를 선택지의 부족에서 오는 막막함. 막대한 죽음을 건너 왔음에도 갈라져버린 세계의 모습을 보면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을 떠올려도 어두운 혼돈에 집어 삼켜져 생각을 이어 가기 힘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두 사람도 같았겠지. 긴 시간이 흐르고 입을 연 사람은 라하브레아였다.

“우리가 만든 별의 의지는 패했다. 따라야 할 지침이 있다면 승자의 의지가 아닌가?”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생명에게 맡기자는 말인가”

제대로 형식을 갖추었을 때의 토론은 승자도 패자도 생기지 않는다. 논리에 논리로 부딪히면 상대 진영을 설득하고 설득되는 경우가 없진 않았다. 그것을 승패로 구분하지 않았다. 같은 의견을 가지게 되는 일을 승패로 가르지 않았다. 반대로,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는 다음 토론을 기약하며 물러날 수 있었다.

하이델린과 조디아크의 경우는 달랐다. 조디아크를 창조한 우리와 하이델린을 창조한 그들은 물러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하이델린이 승리를 거머쥐었으나 하이델린 측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승패에 굴복해 승자의 말을 따르고자 하더라도, 우리를 이끌 승리자는 부재했다.

시간은 많았다. 시시각각 다가오던 종말에 쫓기던 때와 달리 토론은 길게 이어졌다. 세명밖에 참여할 수 없는 빈약한 토론이었고 지나간 종말이 너무도 큰 상처를 남았기에 이어지지 않는 토론이었다. 그럼에도 토론을 했다. 살아남았으며, 살아가야 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해야 했다. 자리에 없는 하이델린 측의 의견에도 무게를 실은 끝에 내려진 결론은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생명에게 주어도 되는지 직접 판정을 내리자. 우리에겐 그만한 시간이 있다.

작고 어리석으며 약한 인류의 틈에 섞여 살아가자. 그들이 정말 별을 맡길 수 있는 이들인지 판정하자. 때로는 안에서, 때로는 바깥에서, 때로는 그들이 되어서 판정하자. 초월하는 힘을 이용하면 그들 틈에 섞이기는 어렵지 않았다. 현 인류 중엔 갈라지기 전의 세계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꿈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기에, 그 틈새로 섞이는 일 또한 어렵지 않았다.. 

갈라진 이들이 기억으로 혹은 꿈으로 엿본 완전한 세계는 금방 선망의 대상이 되어 낙원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고, 그 문명을 재현하고자 그 속의 삶을 모방하고자 했다. 건물을 흉내내 세우고 의복을 따라 지어 입기도 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동일한 상이 있었다. 그럴싸한 결과물들이 만들어졌다. 만족스럽지 않다 말했더니 엘리디부스가 답했다. 조금만 이끌어 준다면 별을 맡겨도 될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짧은 생을 살고 눈을 감았다. 태어나는 이들은 많았으며 죽는 이들 또한 그만큼 많았다. 하나의 생명이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으며, 그 천수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저물고, 죽음의 공포에 내몰려, 고작 육신의 고통에 이성을 놓아버리는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별을 관리하기에 이 생명들은 너무도 짧으며 무르고 약하다. 가장 먼저, 엘리디부스가 기대를 저버렸다.

우습게도, 엘리디부스가 인간을 떠났던 그 시기를 기점으로 인간들은 스스로의 짧은 생, 약한 몸을 한탄하며 기억과 꿈에서 보던 낙원의 재현을 포기하고 완전한 세계를 되찾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목표를 포기하고 새 목표를 세우자,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인류는 착실히 후대로 많은 것들 것 남겼다. 엘리디부스가 기대를 저버리게 만든 짧은 수명은 오히려, 많은 인간들이 결집하는 흐름이 되었다.

한 명이 이루지 못 한 일은 두 명이, 두 명이 이루지 못 한 일은 세 명이.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여럿이. 우리가 위원회의 이름을 이어가던 것처럼 인간들 또한 선대가 이루지 못 한 일을 이루었고, 어느 때엔 남겨 놓은 업적을 발판으로 많은 것들을 새로 세우기도 했다. 선인의 업적은 길이 칭송되었고, 라하브레아는 그렇게 이어받아지는 정신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생각한다.

라하브레아가 언제 기대를 버렸는지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그가 기대를 버린 게 먼저인지 조디아크에게 잠식당한 게 빨랐는지 지금에 와서도 알 수 없다. 라하브레아가 인간 마을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렸던 시기 전후에 문명이 하나 사라졌다. 인간들이 꿈과 기억에 의존해 모방해 세우던 건물은 아모로트의 것과는 재료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달랐기에 금방 무너져 내렸고, 불타 사라졌다.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던 문명은 유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라하브레아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엔 조디아크에 의해 영혼의 많은 부분이 물들어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대를 져버렸는지도 물어볼 수 없었다.

엘리디부스와 라하브레아가 현 인류를 떠난 정도로 달라진 건 없었을 터인데, 기다렸다는 듯이전쟁이란 것이 발발하기 시작했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도 모자를 짧은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고자, 어리석은 이들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었고, 개인 사이에서 끝날 수 있었을 불화가 집단으로 번졌다. 그 어리석은 자멸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기대를 버릴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엘리디부스와 라하브레아는 어딘가에서 인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희미한 영혼의 색을 보면서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도 갖지 못 했기에. 라하브레아가 기대를 버렸을 때부터 세계 통합 계획은 설계되고 있었다.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얄팍한 욕구와 어디서나 생겨나는 질시, 섣부른 오해들. 부추기기 쉬우며 혼돈을 일으키기 좋은 감정들은 차고 넘쳤다. 짧고 약하며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별을 맡긴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보이드가 되어버린 제13세계를 제외하면 일곱 번째 아더의 준비까지도 순조로웠다. 원초 세계와 거울 세계의 에테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세운 나라도 오래도록 유지 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후계자를 들이는 일이었다. 세습제를 버리고 적당한 인물에게 황위를 주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나라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적당한 혼돈을 가져오기에는 세습만한 것이 없다.

그런 이유로, 사랑도 정도 없이 필요에 의해서만 들인 왕비는 인간의 기준에 맞춰 적당히 아름다웠다. 담고 있는 지식의 양도 그 정도면 불완전한 것에 비해 만족스러웠다. 적당히 화목한 황가의 모습을 연기하면서 임신한 왕비를 돌보았다. 인간의 백 년 따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인데, 왕비와 함께한 시간은 더욱 짧으며, 그녀가 임신했던 기간은 말 할 것 없이 찰나였지만, 그 사이에도 정은 들었는지, 왕비의 배가 불러올 때면 태어날 후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여섯 번의 통합을 이룬 원초세계의 인간들은 처음과는 달리 봐줄 만한 혼을 갖고 있었다. 본래 생명이 가지고 있어야 할 빛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밝기였지만, 영롱해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빛. 지금까지는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내려간 영혼이기에 불완전했다면, 완전한 인간인 내 영혼을 잇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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